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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99-01-16 00:03
중병일수록 순한 약으로?
 글쓴이 : 요산 김태국
조회 : 6,268  
한의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황제내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병이 가벼우면 생
기를 돋우어 병을 쫓아내고, 병이 중하면 오히려 순하게 다스려라.](因其輕而揚之
因其重而순之) 다시 말해 중병에는 약의 양도 일반환자보다 줄이고, 약재 선택도
더욱 순한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흔히들 병이 중할수록 약이 독해지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
제로 서양의학에서는 약은 독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하므로, 중병일수록 약이 더
세어지는 경향이 있는 줄로 안다. 그래서 항생제도 갈수록 고단위로 처방되고, 암
조직을 죽이는 항암제쯤 되면 그 부작용은 심각해서 간혹은 암으로 죽기보다 약
부작용 때문에 수명이 더 단축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물론 모든 한의사들이 황제내경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암 치료를 위한 한약재를 다룬 중국책에는 만다라화, 감수, 대극, 원화, 대황 등
맹독성 한약재가 많이 실려 있다. 이런 약재들이 더러는 암의 진행을 늦추는데
도움이 되는 수도 있겠지만 그 부작용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왜 한방의학은 일찌감치 중병에 순한 약으로 다스리기를 권했을까를 생각해본
다. 병이란 처음부터 중병이 드는 게 아니라 가벼운 데서 점차 악화되는 것이 일
반적이다. 그러나 병세가 깊을수록 한편으로는 생명력은 그만큼 줄어져서 급기야
생명력이 병을 견디지 못하면 끝장 아니겠는가? 그런데 병약은 언제든지 기운을
상한다. 그러므로 중병일수록 함부로 병약 쓰기가 조심스럽고, 어떡하든지 순한
약재로 나약해진 생명기운을 북돋우는 데 주력하려는 것이다.
말기 암환자 처방에 더덕, 인삼, 해삼, 백복령, 귤피, 초두구, 백편두, 육계, 천
궁, 초결명, 죽여, 대복피, 생강, 감초 등이 자주 선택되는 것이 그 예다. 이런 약
재들은 어린아이가 무심코 마셔도 아무 탈이 없을 만큼 순하며, 그러면서도 환자
가 복용하면, 식욕이 나아지고 복수가 줄며 몸이 덜 괴롭고 잠자기가 수월해지는
등 병을 견디기가 쉬워진다. 서산에 기운 해를 돌이킬 수는 없을지라도 독한 약
으로 생명기운을 상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조력이 되는 방법이 한방병리에도 맞
고 어쩌면 더 인간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