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학회의 창립배경과 역사

1988년 당시 부산에서 활동중이던 경희대 한의대 동문 중 친한 선후배 10명이 모여 공부를 겸해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 있었다. 이들은 매주 한번씩 만나곤 했는데 어느날 모임 회장을 맡고 있던 김중한(동의대 교수)씨가 어디서 무위당 이야기를 듣고 “대구에서 이름을 날리던 대단한 분이 부산에 와 계시다는데…”하며 운을 뗐다. 다들 궁금해하자 김교수가 먼저 찾아가 보기로 했다.

두번이나 무위당 댁에 다녀온 김교수는 “대단한 분이다. 원전(原典)부터 치병(治病)까지 막힘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우리끼리 공부할 것이 아니라 이분께 가서 배우자”고 발의했다. 그래서 10명의 젊은 한의사들은 그대로 무위당을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

“선생님은 대구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1년 내내 황제내경 소문(素問)편만 강의하셨다. 마치 이 사람들이 정말 ‘공부’하러 온 것인지 시험하는 것 같았다. 사실 섣불리 처방부터 말했다가 제자들이 병리도 잘 모르고 부자 같은 약을 함부로 써서 탈을 냈더라면 지금의 소문학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김명준 부회장)

처음에는 주위 한의사들도 ‘오래 가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공부모임에 참석하는 한의사들은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소문학회로, 부산에서 창립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간 한의사들의 학술모임이다. 현재 도마다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 소문학회라는 이름은 무위당 선생이 “황제내경 소문”(黃帝內經素問)을 기본으로 하여 의학을 강론했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중국 고대 황제 헌원씨가 지었다는 이 책은 동양의학의 경전으로 추앙받는다.

무위당 선생은 그의 스승인 대학자 석곡 선생에게서 의학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무위당이 유명해진 것은 어떤 특정한 질병을 잘 다스린다거나 특별한 비방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스승인 석곡 선생은 “황제내경 소문”의 핵심을 간추린 “소문대요”(素問大要)와 “동의보감”에서 소문의 원리에 맞는 내용을 간추린 “의감중마”(醫鑑重磨)라는 두권의 의서를 남겼고, 무위당은 스승의 처방을 전국에서 모아 편집한 “신방신편”과, “의감중마”에 고금의 처방을 편집해 넣은 “백병총괄 방약부편” 등 두권의 저서가 있다. 그는 스승에게서 배운 소문학을 평생 실천하면서 꾸준히 이를 널리 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문학회(www.somun.or.kr)는 현재 대한한의사협회에 정회원학회로 공식 등록되어 있다. 현재 200∼300명의 정회원이 있으며(정회원 수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만 정회원으로 인정하는 학회의 전통 때문이다) 전국 11곳에 지부를 설치하고 회원들의 공부를 돕고 있다. 회원들은 매주 1∼3회 함께 모여 소문학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보름마다 한번씩 파견강사들로부터 직접 강의를 듣는다.

“지금 우리나라 한의학계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그동안 왜곡된 채 전해 내려온 한의학, 체질요법이나 각종 대체요법 등의 혼재, 마오쩌둥 이후 변질된 중국의학의 국내 유입 등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의학의 왜곡을 바로잡지 못하고 잘못된 채 전해지다 보니 치료율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치료영역도 대단히 협소해졌다.

또 보조요법으로나 사용될 각종 요법들이 마치 대단한 신기술인 것처럼 포장되어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전 한의계가 마음을 열고 한의학의 원론을 바로세워야만 한의학의 치료영역과 치료율이 제대로 평가될 것이고, 그런 뒤에 서양의학과 대등한 입장에서 비교의학적으로 서로 협조해 나가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김태국 회장)

따라서 소문학회는 동양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 소문”의 참된 철학과 의론(醫論)을 밝힌 석곡 선생의 저술과 무위당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정통 한의학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소문학회는 매년 회원들이 경험한 치료 사례를 학회지를 통해 발표하고 따로 모아 책자로 펴내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한의학계 내부에서만 알려졌을 뿐 대외적으로 일반에게까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한의학이 치료의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객관화된 임상사례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막연히 ‘무슨 약을 썼더니 나았더라’가 아니라 ‘어떤 환자가 어떤 정신적·육체적 경향의 사람이며, 어떤 병리였으므로 어떻게 치료 대책을 세웠더니 나았더라’가 돼야 할 것이다. 소문학회는 이와 같이 객관성 있고 재연 가능한 방법으로 임상사례를 정리하고자 한다.”(박태수 고문)

“선생님은 처방을 잘 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올바른 인생관으로 이끌어 주신다. 거기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마음으로 병을 다스리고 환자의 마음까지 다스리는 경지에 이르신 것 같다.”(장숙희 감사)

무릇 모든 병에는 처음에 병을 초래한 이유가 있다. 요즘에는 심인성이나 울화병 같은 마음에서 오는 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각박한 현대생활이 초래하는 마음의 병이다. 무위당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칠정'(七情·喜怒憂思悲恐驚)을 강조하며 “마음을 다스려야 병을 이긴다”고 강조한다. 먼저 의사 자신의 마음이 맑고 고요해야 환자의 마음을 열고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위당의 인품과 인술을 말해 주는 사례로는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하던 환자의 이야기가 있다. 두시간 정도 무위당과 상담하고 나온 그 환자는 “선생님에게서 뭔가 듬직한 것을 받아왔다. 이것을 지키면 내 병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